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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려느냐, 차라리 '뻔뻔'하라-유영자 <아레오바고5호 특집>
2010-06-29
 
'뻔'하려느냐, 차라리 '뻔뻔'하라

유영자 (프리랜서 작가)

난감하다. 시민의 입장에서 시흥 예술에 대해 얘기해 보라니… 나는 분명 공간적으로 시흥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내 생활은 시시때때로 시정의 영향을 받고 있다. 시흥시민들의 사고와 라이프 스타일과 행, 불행도 나에게 파장을 주고 있는 것 역시 명백하다. 그럼에도 정서적으로 내가 시흥시민이라는 자각은 미미하다. 아니, 그런 자각 따위 불필요 하다는 입장이다.

예술이라? 이건 또 얼마나 난감한 소린가.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는 ‘멍청아! 니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발설하지 마.’라고 경고 했지만 내가 예술을 ‘발설’하겠다고 나섰으니 멍청이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시흥예술의 발전방향’ ‘시흥예술의 부흥을 기대하며’ 따위 제 머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도 없는 뻔한 글에 질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온전히 멍청이가 될 수는 없음을 밝혀 둔다.

나는 굳이 평균으로 치자면 한 달에 한 번 꼴 전시장이나 공연장을 찾는다. 순수한 나의 의지로, 혹은 사회적 관계를 위해, 때로는 근처에서 볼 일을 보고 중간에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시장에 간다. 어쩌다 식구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5~6만 원 짜리 티켓도 끊는다. 대개는 공짜로, 혹은 저렴하게 볼 수 있는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 클래식 음악회, 그림 또는 사진 전시회에 간다. 공연장이나 전시장 장소로는 시흥 내외가 대략 공평하게 갈린다. 이런 행위는 ‘공허한 마음을 달래 줄,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할 감동 깊은 작품을 보고 싶다’는 그야말로 예술의 존재 이유에 제대로 다가 선 의도를 갖고 있는가 하면 ‘이런 것도 안 보고 살면 내 삶이 너무 불쌍할 것 같다’는 자기 위안도 포함한다. 지인의 초대에 마지못해 응했지만 내가 과연 이 자리에 왜 앉아 있는 가를 묻고 싶은 별 볼일 없는 순간도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쨌든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가 흔히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는 그것들을 접한다. 물론 예술의 범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따로 논할 문제다. 영화는 훨씬 더 많이, 그리고 책은 최소한 앞서 거론한 그 ‘예술들’ 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이 보고 있다. 이건 순전히 내 취향이다.

여기가 내가 서 있는 지점이다. 시흥에서의 예술 행위에 관심 갖는 이들이 어떤 부류인지 분석해 이들의 확대 방안을 고민하는 일은 문화예술기관 종사자나 정책입안자들에게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다만 나는 여기서 예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의 말을 하고자 한다. 난 지금 논문이 아니라 칼럼을 쓰고 있으니 일반론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은 하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아무튼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왜 예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당신들 뭔가 착각하는 거 아냐? 내가 축구에 관심 갖는 것과 당신이 연극에 관심 갖는 것의 차이가 도대체 뭐지? 음악회에 가느라 격식을 차리느니 편안하게 누워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전세계 음악을 자유롭게 감상하는 편이 좋다고. TV로 보는 드라마에도 ‘인생’이 들어 있어. 따분하기 짝이 없는 작품을 들이밀려 내 시간을 빼앗지 말아 줘.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당신은 고상하고 나는 저속한가. 진짜 그럴 듯한 작품이 아니라면 난 그 ‘동네’에 눈 돌릴 생각이 없단 말이야.

맞다. 반박할 어떤 근거도 난 갖고 있지 못하다. 마침,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 갈 기회가 있었다.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해 티켓을 예매하고 시간 맞춰 찾아간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방문은 아니었다. 안산터미널에서 지인을 배웅한 후, 5월의 햇살과 문화예술의 전당과의 지리적 근접성이 아까워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쩌면 이런 방문이 더 이상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국제아트페어’라는 이름 아래 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으니 일단 헛걸음은 면했다. 수십 명의 국내 화가들 작품사이에 서너 명의 해외 화가들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고 대상과 특별상 등 수상자들의 작품은 별도 부스를 차지하고 있었다. 왜 옆 동네 문화예술의 전당 얘기를 주절거리고 있는가? 이곳에서 들은 화가들의 푸념이 고스란히 시흥 예술가들, 넓게는 대다수 예술가들의 푸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일 오후 시간이긴 했지만 ‘전당’에는 관람객이 없었다. 각자의 부스를 지키는 화가들과 그들에게 인사를 차리기 위해 온 지인 몇 명이 전부다. 유일한 ‘진짜’ 관람객 나는 못 올 자리에 온 사람처럼 불편하다. 겸연쩍기는 화가들도 마찬가지라 너도 나도 한마디 한다.

“주말엔 가족단위 관람객이 조금 있었는데… 오늘은 우리 식구들이 전부네.”
남의 동네 문화예술의 전당을 폄하할 마음 없고 그날의 전시회에 대한 평가도 여기서는 논외다. 다만, 그 거대한 전당 건물과 배치된 인력이 민망하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상황은 대다수 지자체가 겪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문화예술의 전당도 없는 시흥’을 한탄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지어 놓고 보면 상황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주장 못하겠다. 예술회관 건립 논의가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벤치마킹 한다며 다른 지자체 흉내나 낸다면 결과는 뻔하다. 시흥의 현실은 물론, 인근 지자체 예술회관들과의 접근성, 상호보완성 등을 충분히 반영한 개성 있고 실용적인 예술회관 탄생을 기대한다.

기왕에 ‘시민’의 입장에서 ‘시흥예술’ 운운하고 있으니 오늘은 조금 더 개탄하고 요구 하련다. 예술가들에게 주문하느니, 그대들 작품이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을 건방질 정도로 자신감 있게, 쉽게 설명하라. 물론 당신들의 뜨거운 숨결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으로는 그런 자신감이 태어나지 못하리라. 그리고 ‘사과나무’를 심어라. 작은 나무였을 때 자연스럽게 生 음악을 듣지 못하고 자란 사과나무는 음악이 열매를 맺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몸으로 자각 하지 못한다. 미래 관객을 키우는데 역량을 할애하는 일은 곧 현재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공연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탄수화물은 될 수 없어도 비타민과 같다’는 점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줘라. 이렇게 해서 새로운 관객을 양성하라. 시흥에 있는 공연장 갈 때 마다 똑같은 얼굴 보는 일은 유쾌하지 못하다. 이건 뭐, 계모임도 아니고.

돈 내고 티켓 사서 공연장 갔는데 입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공짜 초대권 남발하는 무매너는 제발 삼가라. 결국 제 살 도려내기 아닌가. 과감한 시도를 통해 관객이 변화를 느끼도록 해 줘라. 작품 내용은 물론 형식, 공연 시기, 공연장 분위기 뭐든 좋다. 관객이 단순히 특정 작품의 내용만 감상하러 공연장을 찾는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이 말 할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한다. 문화예술 관련 업무 맡은 공무원들은 부디 공부 좀 하셔서 ‘시민에겐 감동을 예술가에겐 희망을 스스로에겐 자부심을’ 선사하시길.
써 놓고 보니 이 글 또한 뻔하다. 어쩌랴, 나도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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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문화현장을 가다/극단 기린 '한단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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